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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주의 진수 하나님의 절대주권 제 1장 서 론 (2. 연구의 방법과 범위-2)
  글쓴이 : 담당자     날짜 : 07-12-06 15:20     조회 : 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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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2. 연구의 방법과 범위-2
 

우리 앞에는 더 많은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과 세속주의(世俗主義) 사상이 커다란 공룡처럼 우리의 갈 길을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골리앗 앞에 섰던 다윗처럼, 세속주의 신학자들과 무신론(無神論)적인 인본주의자들이 칼과 단창으로 나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결국 역사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이다.

현대의 신학 사조의 특징은 혼합주의 사조이며 그 중심 사상은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이다.1) 종교 다원주의 신학은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 종교의 중보자들 중 하나라고 그들은 말한다.2) 종교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대화(相對化)시킴으로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 하나님 되심을 부인한다. 종교다원주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는 현대판 역동적 단일신론자 혹은 군주신론자(Monarchian)들임을 알 수 있다.3)

종교 다원주의의 신 중심론(神 中心論)은 하나님의 주권을 사실상 부인하는 사상이며 선택 교리를 전면 무효화시키는 비(非)성경적 사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과 유일한 중보자 되심을 부인하는 군주신론인 이단 사조의 한 지류임을 칼빈의 예정론을 따라 재확인하여 둔다.4)

그러나 칼빈의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이 인본주의 철학의 결정체들인 종교들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미리 정하시는 선택에 의해서 되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5)

결론(結論) 및 제언(提言)으로 스코틀랜드 신학자인 존 랍비 던컨(John Rabbi Duncan) 박사는, 칼빈주의와는 달리 반율법주의(反律法主義, Anti-Nomianism)와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는 출발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즉, 반율법주의는 우리는 그리스도적(的)이고, 하나님적(的)이다(Townee)의 언어를 사용하여)라고 말한다.6)

아르미니안주의는 구원 역사의 반(半)은 하나님 일이요, 반(半)은 사람의 일이라고 말한다(신인협동설, 神人協同說). 그러나 칼빈주의는 구원 역사 전체가 하나님 일이요, 동시에 또한 전체가 사람의 일이라고 주장한다.7)

칼빈주의는 선택자들에 대해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보이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주 비정(非情)하고 단호한 면을 보여 준다고 생각되어 왔다. 칼빈주의가 스스로 멸망하는 완악한 죄인들에 대하여 전혀 동정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용의가 있다. 칼빈주의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에 속한 것이 아닐 것이다.

칼빈주의는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를 문자 그대로의 충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칼빈은 예정론(豫定論)을 취급함에 있어서 피해야할 두 가지 태도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는 태도와 하나님께서 계시(啓示)하신 것에 대한 지나친 주저감을 갖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칼빈에게는 예정론을 취급하는 유일한 규범(規範)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聖靈)의 학교(學校)인 바, 그 안에는 알 필요가 있거나, 알아서 유익한 것은 모두 생략되어 있지 않으며, 알아서 유익한 것만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8)

그러므로 예정 교리에 비난을 퍼붓는 자는 마치 하나님께서 교회에 해로운 것을 조심성 없이 주시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님을 욕(辱)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모든 성경(Tota Scriptura)’이란 원리(原理)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란 원리를 다 가르쳤다. 사람은 예정론을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모든 것들을 다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지 않은 것까지 사색(思索)하려 들면 안 된다. 칼빈이 표현한 것 이상으로 따라갈 만한 더 좋은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정성구(鄭聖久) 교수는 말하기를,


“사실 우리 교회의 성장은 놀라우리만큼 빠르고 대형화되어 갔으나, 교회 성장에 따르는 우리 개혁주의(改革主義) 사상과 삶을 바로 제시하지 못했다. 현대의 무신론적 지성인들은 성경을 이미 죽은 하나님의 일기의 발췌록(拔萃綠)으로 간주한다. 과학이 바로 종교라고 믿는다. 칼빈주의에 도전하면서 칼빈주의는 이미 죽었다고 비꼬고 있다. 잠꼬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결코 죽지도 실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이 참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는 기독교 최전방에 선 사도(使徒)로서 굳건히 서서 이 세상의 골리앗 장군을 향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군하며 모든 거짓된 인본주의 사상과 대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칼빈주의자는 힘을 결코 분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집단적인 배교(背敎) 운동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뭉쳐야 하기 때문이다.”9)


정성구(鄭聖久) 교수는 또 말하기를 “칼빈주의는 사람을 냉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바로 알고 세계를 바로 알므로 우리의 가슴이 뜨겁게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하는 것이다. 칼빈주의는 성경적인 계시관(啓示觀)이요, 성경적인 인생관(人生觀)이요, 성경적인 우주관(宇宙觀)이며, 성경적인 철학(哲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칼빈주의에서 깨달은 성경의 참된 진리를 믿고 성경에 가르치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救贖)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주임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의 가슴은 밖으로 크게 열려져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우리가 만유의 주(主)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는 한 아무것도 헛될 수가 없다. 도리어 뜨거운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죄(罪)를 정복하고 도리어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감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적극적 삶의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주의자는 언제나 “하나님 면전(Coram Deo)”에서 살기를 원한다.

역사상에 뿌리박은 칼빈주의에도 여러 가지 특징(特徵)이 있다. 죽은 정통으로 표현되는 죽은 칼빈주의자가 있다. 그것은 교리만 있고 생활은 없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敬畏心)과 헌신(獻身)의 열정도 식어 버린 박물관의 미이라(mirra) 같은 냉냉한 칼빈주의이다.

그 반면, 성령님의 타는 불에 점화(點火)되어 헌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엘리야’같이 주의 일에 열심이 특심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몸부림치는 칼빈주의가 있다. 그것을 정원태(丁元泰) 교수는 “열정 칼빈주의”라고 불렀다.10)

칼빈주의는 언제나 매우 많은 칼빈주의의 적들과 자칭 지지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교의(敎義)를 단순히 지적(知的)으로 고수(固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이 기본 원리가 나타나는 곳에서는 언제나 이 원리는 추상적 교의가 아니라 생명으로 불타는 생생한 원리로서 삶의 지적(知的) 측면뿐만 아니라 신비적(神秘的)이고, 의지적(意志的)인 측면까지 지배하고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까지도 지배한다고 본다. 하나님의 주권(主權)은 단순한 추상적 교의로 결코 해석될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타오르는 살아 있는 정력적인 원리로 해석되어야 한다.11)

오늘날 많은 현대 교회 중에는,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나 내면적으로는 거의 아르미니안주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우리는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복음주의 신학마저 칼빈주의의 색채(色彩)를 거의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된 일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은 부인(否認)되고 인간의 자유와 권위를 앞세우는 인본주의로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12)

우리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는 이른바 전통적인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계승한 「도르트 대회」의 후신으로 얼마나 거기에 충실한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칼빈주의는 냉냉한 교리만 외우는 것이 아니고 명실 공히 목회의 현장, 설교의 현장, 선교의 현장,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도르트 대회(The Synod of Dort)에서 표현된 칼빈주의 사상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13)

개혁 신학은 ‘경건의 신학’이다(Theologia Pietatis).14)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경건의 대전(Magnum Pietatis)이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책은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진리의 모음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신학 진술의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바른 태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Cognitio Dei et Cognitio sui)의 윤리적 귀결은 참된 경건, 곧 참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15)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의 결합체’를 경건이라고 규정하였다. 칼빈은 세속 철학의 우물에서 이성적 논리를 빌려다가 성경과 합하여 놓지 않았다. 그의 신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윤리적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경건하고 거룩한 삶과 행함에 깨어 있음으로써, 오늘날도 살아있는 감동과 힘을 발휘하고 있다.16)

김재성 교수는 말하기를 “성경에 충실한 신앙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지혜, 용기와 겸손을 동시에 발휘하는 성숙된 인격, 깊은 학문에서 우러나오는 겸허함과 신실함, 진지함과 너그러움이 풍요롭게 어우러진 인품의 향기 등이 칼빈 연구에서 얻은 큰 소득이다.”라고 했다.

칼빈은 경건한 사람으로 개인의 수련(修練)만을 위해서 정진한 수도사가 아니었다. 교회를 위한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다. 우리 한국의 신학자들, 목회자들, 신학도들 그리고 성도들도 한국 문화와 사회, 정치와 교회와의 관련성을 집요하게 추구(追求)하고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한 지혜를 칼빈과 같이 말씀 안에서 얻어야 할 것이다.

교회와 세상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가고 현장과 이론이 서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신학자들은 쌓은 학식과 지식에 근거하여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움을 제공하고, 목회자들은 교회의 역량(力量)과 지도력을 동원하여 한국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터득(攄得)해야 한다.17)

 

                                                                                                     -계속-

 


1)Alister E. McGrath, Christian Theology (Oxford : James Blackwell, 1994-1995) p. 102.

2) F. Paul Knitter, No Other Name (New York : Orbis Books, 1985), p. 230.

3) 유태주, “종교 다원주의자들의 신 중심론에 대하여”, 「신학과 사회」 제4집, (한일신학대학교, 1987), pp. 201-206.

4) 군주신론(Paulus of Samosata나 오늘의 소위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 같은)에 불과하다.

5) 한국칼빈학회 편, 「칼빈신학 해설」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p. 318.

6) <英 대학 속담> 대학가에 일반인이 살고 있으나 대학과는 관계없는 사람을 경멸하여 부르는 말

7)Alan Sell,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 구원」 김경진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3), p. 9.

8) Edwin H. Palmer, 「칼빈주의 5대교리」 박일민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2), p. 167.

9) 정성구, 「하나님께 더 가까이」 (서울: 총신대출판부, 1982), p. 38.

10) 정원태, 「열정 칼빈주의」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11) Henry Meeter, 「칼빈주의 근본 원리」 신복윤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0), p.99.

12) 「신학사전」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81), p. 441.

13) 정성구, 「칼빈주의 연구」 (서울: 한국칼빈주의연구원, 1994), p. 367.

14) Ford Lewis Battles, The Piety of John Calvin (Grand Rapids: Baker, 1978).

15)김재성, 「칼빈과 개혁 신학의 기초」 (서울: 합동신학대학원 출판부, 1997), pp. 119-174.

16) 김재성, 「칼빈의 삶과 종교 개혁」 제7장 참조.

17) Ibid., p. 541.


 

xyjgood   10-07-0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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