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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빈주의 진수 하나님의 절대주권 제 1장 서 론 (1. 연구의 목적)
  글쓴이 : 담당자     날짜 : 07-10-06 11:07     조회 : 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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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서  론

 

1. 연구의 목적


1885년 최초의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1)의 입국(入國)을 기점으로 한국의 장로교(長老敎)는 선교 초기부터 칼빈주의(主義) 혹은 개혁 주의적(改革主義的) 정통 신학 (正統神學)을 근간으로 성장하여왔고,2) 우리는 장로교의 원조(元祖)인 개혁자(改革者) 칼빈(Calvin)이 이제까지 우리에게 얼마만큼이나 어떻게 소개되고 그의 신학이 얼마나 연구되고 한국의 크리스천의 삶의 신학적 근거가 되고 있는지를 검토해 봄으로써 우리 신앙을 재검토하고 비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3)

본 연구의 서론에서는, 한국 교회는 보수적인 신앙과 장로교 신학의 요점인 칼빈의 신학 사상을 근거로 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 교회가 가장 강성한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를 갖고 있으며 20세기가 칼빈르네상스(Calvin-Renaissance)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칼빈 연구나 칼빈주의(Calvinism) 연구에 대해서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에 왔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是認)하지 않을 수 없다.4)

저명한 칼빈 연구가의 한 사람인 죤 멕닐(J. T. McNeil)은 칼빈주의 연구의 결론에서 말하기를 “오늘의 서구 역사는 칼빈의 영속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더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실로 그가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는 물론, 유럽 사회의 정신사(精神史)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5) 사실, 대부분의 개신교에 속한 교회들은 칼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6)

개혁주의 신앙(Reformed Faith)은 성경 한 권에서 출발하여 각기 나름대로의 강조점을 가지고 발전해 오고 있지만 항상 성경으로 되돌아가고자 노력한다. 수많은 신학 서적 중에서 가장 순수한 기독교 신앙, 가장 순결한 성경적 진리를 집약한 책을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基督敎綱要)」와 칼빈의 성경주석(聖經 註釋)을 꼽는다. 이 책에는 성경의 진리가 응축 되어 있는데 인용된 신․구약 본문의 숫자는 신약이 4,330번, 구약이 2,474번이나 된다.7)

1536년 4월에 「기독교 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책이 바젤(Basle)에서 출판되었다. 칼빈의 나이 겨우 26세였다.

1536년의 초판은 6장8)으로 되어있다. 칼빈은 일생을 통하여 「기독교 강요」를 증보하고 수정하고 또한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기독교 강요」를 라틴어판으로 여덟 번(1536, 1539, 1543, 1545, 1550, 1553, 1554, 1559년),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다섯 번(1541, 1545, 1551, 1553, 1560년)이나 출판하였다.9) 이 책은 그리스도교 문헌(文獻) 중 가장 귀중하고 영원히 남아야 할 책으로 지적(知的)이며 영적(靈的)인 깊이와 능력을 소유한 조숙(早熟)한 천재의 걸작(傑作)이었다.10)

신학상(神學上) 배치되는 것 같은 아르미니우스(Arminius)는 “성경 다음에 가는 서적은 칼빈의 성경 주석이니 내 제자들에게 이 책을 가장 많이 인용하라고 권하였다.”11) 이유인즉, 칼빈은 “성경해석에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12)

고전학자인 스캘리거(Joseph Scaliger)는 칼빈을 가리켜 “사도시 대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혜자”라고 하였다.

교정(敎政)을 맡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개혁주의(Reformed) 신앙에 충실하려는 몸짓보다 이기적이고 파행(跛行)적으로 세력 확장에 여념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또한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교리(敎理)문제에 대해서 냉담하며 더 심한 사람들 중에는 교리는 허무맹랑한 이론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실제생활이라고 생각한다.13) 근래에 와서는 칼빈 신학이 정신병적 현상이라고까지 심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칼빈주의는 “낡아빠지고 노폐한 신조”라고 공개적으로 단언된 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14) 오늘에 와서는 비성경적 신학을 가르치는 자가 많음을 보는 동시에 칼빈주의를 기탄없이 말하는 자를 만나기가 좀 어렵다.15)

현재 기독교계에는 두 가지 거대한 신학조류인 칼빈주의(Calvin- ism)와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가 있다. 같은 논제(論題)를 가지고 출발한 이들 두 사상(思想)은 논리 방향이 점점 멀어지더니 급기야는 극과 극으로 멀어지게 되었다.

칼빈주의(Calvinism)는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강조하고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고 인식되어 왔다. 각자는 하나님 말씀에 가장 깊은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하나 말씀에 대한 해석에 있어 이미 서로 다른 철학적 관점(觀點)의 차이가 있다.

칼빈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을 숨겨 두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그러므로 예정(豫定)에 대해 성경이 선포(宣布)하는 것을 굳이 신자들에게 감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16) 성경에 심오한 증거인 이 진리(칼빈주의)를 받아들이고 말할 수 없다면 “이가봇” 즉 영광(榮光)이 떠났다. (삼상 4:21)가 우리의 성단(聖壇)과 교회 문(門)에 대부분 쓰여져 있다.17)

해밀톤(F. E. Hamilton) 교수는 “칼빈주의는 벌써 종교계에 부적당하게 되었다고 의사를 표시하고 가장(假裝)하고 있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일반 교인 혹은 교역자(敎役者)까지라도 예정을 믿는다고 선언하는 사람을 야유적(揶楡的) 관용(寬容)의 태도로 대하고 현대와 같이 문명시대에 진정한 칼빈주의자라고 칭하는 따위의 지적 희유물(稀有物)이 존재할 까닭이 없는 듯이 생각하는 모양이다. 칼빈주의를 말하는 것은 “오늘에 와서 중세의 종교 재판소의 필요를 논하고 지구 평판설을 논하는 것과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간주하고 칼빈주의는 근대 과학 시대 이전에 미개한 사람들이 준봉하고 있던 공상적 사상 체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라고 하였다.

영국의 트프레디의 말을 인용한다면 “지금 많은 사람들은 종교 개혁의 원리를 내어 버렸다. 어떠한 교리보다도 심한 비난을 받고 결국에 가서는 만화 꼴이 되는 형편으로 몰락했다.”고 하였다.18)

예정론은 칼빈의 창작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 분명히 나타난 교리를 조직적으로 진술한 것뿐이다. 그는 성경에서 이 교리를 발견한 제일 처음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태어나기 1000년 전에 벌써 어거스틴(St. Augustine)이 이 교리의 요점을 가르쳤고 종교 개혁(宗敎改革) 운동의 지도자가 다 그러하였다.19)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는 말하기를 칼빈은 그 깊은 성경 지식과 예민한 지력과 조직적 천재성을 가지고 이 진리를 앞서서 가르쳐진 것보다 더 명료히 더 힘 있게 변명하는 일이 칼빈에게 위탁(委託)되어진 것이었다.

그는 그 시대의 탁월한 성경 신학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성경(聖經)이 인도하는 곳에 그는 갔다. 성경이 멎는 곳에 그는 멎었다. 그는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것 이상을 넘어가는 것을 거절했고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주저 없이 수용하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이 교리를 칼빈의 이름 아래 돌려 「칼빈의 예정론(豫定論)」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이 이 교리를 여하히 받는가가 아니고 그것이 참된 것인가 그렇지 않는 것인가에 있다고 말했다.20)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 중에 사람과 동물은 서로 다른 자기의 소리를 가지고 말하며 노래한다. 까마귀(아르미니안주의)와 꾀꼬리(칼빈주의)로 비교해 본다면 이 둘은 서로 다른 노래 소리(음성)를 낸다. 똑같은 알에서 태어나도 꿩 새끼는 산으로 가고, 오리 새끼는 물로 간다. 똑같은 태양빛 아래서자라도 소나무는 소나무이고, 잣나무는 잣나무다. 근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르미니안주의자(Arminianism)이기에 까마귀 소리(자기의 소리,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를 낸다. 칼빈주의자(Calvinism)이기에 꾀꼬리 소리(말씀의 소리, 신본주의(神本主義) 소리)를 낸다. 진리 체계를 하나님의 자증적 계시(自證的啓示)인 신구약 성경 66 권에서 찾는다.

교회(敎會) 중 얼마는 그들의 고백에서 칼빈주의 신학을 표방(標榜)하면서도 강단과 회중 앞에서 아르미니안주의 신학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브로그햄경(Lord Brougham)은 한 큰 전통이 깊은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의식(儀式)은 로마 카톨릭식이고, 신조(信條)는 칼빈주의적이며 성직자(聖職者)는 아르미니안주의이다.”21)

어거스틴은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의식적으로 그것을 “최상의 기쁨”이라는 하나의 신학으로 정립했다.

R. C 스프라울(Sproul)은 오늘날 상당수의 교회들이 펠라기우스(Pelagius)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했다.22) 그것을 치료하는 처방책은 교회와 특별히 하나님의 주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거스틴의 “최상의 기쁨”의 교리를 건전하게 복용하는 것이라고 했다.23)

한철하(韓哲河) 박사는 한국 장로교나 감리교나 그들의 교리의 근원인 칼빈이나 웨슬리를 신학적으로 모르고 있고, 주관적 경험 중심의 신앙이요 도덕주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24) 다시 말하면 한국 장로교회는 칼빈 신학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25)

정성구(鄭聖久) 교수는 다음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장로교회가 한 세기 동안 개교회의 부흥과 성장에만 주력(主力)하다 보니 정작 장로교회로서의 특성(特性)과 뿌리를 잊어버리고 비복음적이고 잡다한 요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도 이렇다 할 만한 비판이나 대안(代案)이 없었다.

그 본래적인 신학이나 신앙 노선(路線)을 위하여 그 뿌리를 찾아보려고 애쓰지 못했다. 문제는 신학교에서 배운 개혁주의(改革主義)는 하나의 교리적인 자기 입장으로 삼았을 뿐 그것이 목회 현장(牧會現場)에서는 전혀 무관했다.26)

칼빈주의 예정론의 간명(簡明)한 진술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에서 발견된다. 칼빈주의 신앙 고백은 엄격하다. 그리고 철저한 생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신앙과 생활이 별개일 때 그것은 벌써 칼빈주의도 신앙인도 아니다.27) 리이드는 말하기를 “장로교회는 혹자가 칼빈주의를 비판하더라도 분개하지 않으며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선두에 그의 이름을 두는 데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고 천명한 바 있다.

칼빈주의와 경쟁할 만한 사상 체계는 없었다. 칼빈주의가 참이든 거짓이든 역사(歷史)를 공정하게 보는 학도(學徒)라면 칼빈을 지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맨 앞자리에 놓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과 동일한 진리를 칼빈이 가르쳤다. 이 어두운 시대에 칼빈이 전한 것이 진리였다면 오늘날도 진리(眞理)이다. 진리라면 믿어야 하고 사랑하고 따라야 한다.28) 성경적인 신앙은 성경을 바로 깨닫는 데 따라 계속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 개혁 신앙의 소유자들은 소금과 빛의 사명을 띠고 있다.

우리는 칼빈주의가 기독교를 바로 알고 설명한 교리임을 확신(確信)한다. 칼빈주의를 강단에서 힘 있게, 생활의 삶 속에서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분명하게 증거(證據)하는 것이 본서의 목적이다.

 

 

- 계 속 -

 


1) 언더우드 호레이스(Horace G.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元社尤), 1859-1916): 미국의 북장로교(PCUSA) 선교사 역임. 런던 출생, 미국 뉴저지주로 이주, 인도선교사로 결심했다. 한국 선교사로 방향 전환. 1884년 신학교 졸업 곧 목사로 안수받다. 12월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 이수정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1897년 새문안교회 창설. 1915년 연희전문학교 초대 교장으로 봉직, 그 이듬해 건강악화로 귀국하여 사망했다.


2) 이근삼,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과 신앙고백(神仰告白)의 정착화」 (고신대학 논문집 제7집), pp. 13-19.


3) 고려신학대학 부설 교회문제연구원 편, 「교회 문제 연구」 제 1 집, (고려신학대학 출판부, 1979), p. 123.


4) 정성구, 「칼빈주의 연구」 (서울: 한국칼빈주의연구원, 1994), p. 153.


5) J. T. McNei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62), p. 234.


6) John H. Leith, 「칼빈의 삶의 신학」 이용원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 p. 3.


7) 김재성, 「칼빈의 삶과 종교개혁」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1), p. 176.


8)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 - 1장 율법(10계명), 2장 사도신경, 3장 주기도문, 4장 성례식과 성찬식, 5장 다른 성례문제들, 6장 기독교인들의 자유로 구성되어있다.


9) “John Calvin to the Reader,” Institutes. Opera Selecta(이하 OS로 함). 5. p. 3.


10)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ristian Church (Grand Rapids: Eerdmans, 1969) Vol. VIII. p. 329.


11) 부산고려신학교, 「파수꾼(把守軍)」 100 - 105호 (도서출판 목양), p. 79.


12) A. M. Hunter, The Teaching of Calvin (London: James Clark, 1950) p. 20.


13) 김성환, 「칼빈주의 해설」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87), p. 11.


14)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神學論文上券」XIII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77), p. 268.


15) 이근삼, 「칼빈 칼빈주의」 (부산: 고신대 출판부, 1972), p. 16.


16) R. C. Reid, 「칼빈주의 뿌리와 열매」 홍병창 역, (서울: 교회교육연구원, 1985), p. 12.


17) Lorrain Boettner, 「칼빈주의 예정론」홍의표 역, (서울: 보문출판사, 1977), p. 15.


18) L. Boettner, 「칼빈주의 예정론」 김정덕 역, (서울: 세종문화사, 1977), p. 8.


19) 박형룡, 「박형룡박사저작전집:神學論文上券」 (개혁주의신행협회, 1977), p. 339.


20) L. Boettner, 「칼빈주의 예정론」, p. 17.


21) R. C. Reid, 「칼빈주의 뿌리와 열매」, p. 24.


22) Luther는 종교 개혁을 상속받은 현대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추측하건대 그는 분명 펠라기우스파에 사로잡힌 현대 교회에 관한 글을 쓸 것이다. R. C. Sproul. Willing to Believe : The Controversy over Free Will (Grand Rapids : Baker Books, 1997), p. 21.


23) John Peiffer, 「지상에서 가장 큰 기쁨」 마영래 역, (서울: 좋은씨앗, 2002) p. 68.


24) 한철하, “한국 교회의 신학적 자립” 「기독교사상」, 1965. 6.


25) 이상규 편, 「한국에서의 칼빈 연구 100년(1884~1984)」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p. 9.


26) 정성구, 「칼빈주의 연구」, p. 343.


27) 송종섭, “칼빈주의란 무엇인가?” 「풀빛목회」 제22집 (1983. 5), p. 32.


28) R. C. Reid, 「칼빈주의 뿌리와 열매」,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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